장바구니

최상위 평가 상품

Call Us Today! 031-902-8533|service@kpics.org
바로 가기...

[문근찬컬럼]
게시글 보기
아담 스미스와 한국의 보수주의
Date : 2016-11-06
Name : 문근찬
Hits : 3637

산업 혁명기와 국부론

서구 유럽 특히 영국에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이라는 책을 썼다. 국부론은 방대한 책이라 실제로 읽기는 어렵다. 그래서 단지 제목에 더해서 보이지 않는 손같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소개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국부론의 내용이 오히려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근대 경제학의 모태가 된 책인데, 그 얘기는 오늘날의 사회는 국부론의 논리에 따라 운영된다면 국가가 부강해지고 국민은 더 잘 살게 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아담 스미스의 생각은 무엇인가? 18세기 영국이 네덜란드보다 더 게으르게 된 원인에 대해 아담 스미스는 그 차이를 네덜란드에 상업 질서가 먼저 확립된 점을 들었다. 즉 민족성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있다기 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는 제도가 민족성을 형성하고 그 차이에 의해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원래 도덕 철학자였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행동에는 어떤 원리가 존재하는가? 여기에는 어떤 법칙이 존재하는가? 뉴턴은 자연 철학자로서 자연의 원리를 수학으로 설명하기 바란 것과 같이 아담 스미스도 자신의 도덕 철학을 설명하는 일반 원리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다가 시장 경제라는 질서를 찾아 낸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담 스미스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한다든가 인위적으로 계획하는 것은 실패할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결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의 자기 이익(Self-interest)을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야지, 전체 국가를 위한 중앙에서의 결정은 이성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것으로서 이런 시도는 과격한 경우가 많고 결국 실패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각자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공익을 창출하는가?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익 추구는 단순한 이기심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 명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아직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흔히 ‘self-interest’이기심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기심‘selfishness’이므로 뉘앙스가 조금 다르고 자기 이익정도의 의미다. 아담 스미스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목적과 관심만을 알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이익에 중심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대부분 신중함(prudence)’의 윤리를 지킨다고 했다. 이는 모두가 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생각하고 공감하는 공정한 관찰자가 자아 안에 있다는 개념이다. 이 점이 바로 나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이익도 챙겨줘야 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다름아닌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과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의 사욕에 의한 것이다.”란 말이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해 주는 것이 시장의 조정 메커니즘이며, 이것이 마치 우리가 늘 쓰는 언어와도 같이 사회적 규약으로 성립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어떤 사람이 혹시 신용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후에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을 것인가를 스스로의 관찰자를 통해 살펴보고 여기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사는 곳이 시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호들이 총체적으로 축적되어 보이지 않는 손을 형성한다. 자연적 질서로서 사익추구의 욕망이 있지만, 이를 추구하는 행동은 제멋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끊임 없이 추구하게 되는 사회가 자유시장 메카니즘이다.

아담 스미스가 보수주의자의 전형일 것이라는 것은 그의 생각의 출발점이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사회와 사람들을 잘 되게 할 것인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혁명적이지 않고 지극히 온건하게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영국을 필두로 한 산업혁명을 거쳐 서구 근대국가를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는 자본가만의 성공이 아니었다. 사실 근대화 초기의 노동자들도 그 이전 봉건시대 농촌에서 굶주리며 살던 형편보다 나았기 때문에 도시의 산업화 지역으로 몰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급속한 변화의 속도 자체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는 국부론을 수 십 번 반복해서 읽고, 아담 스미스의 생각과 정 반대에 위치하는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는 생산에 있어서 축적된 자본의 공헌은 무시되고 그 속에서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만이 부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노동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인데도 마르크스는 시간 당 투입되는 노동은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되려면 계획에 따라 분배하는 경제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수요가 있는 데 투입되는 노동만이 부가가치 있는 노동으로 보았다. 객관적인 시장의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입되는 노동의 양은 각각의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자본가들이 투자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지 중앙에서 계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토대로 소련은 공산주의 혁명을 거쳐 70 여 년 간 현실세계에서 실험을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마르크스처럼 혁명에 기반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시도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아담 스미스의 생각에 반대한 사람들은 끊임 없이 이어졌다. 케인즈는 이 사회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그것 대신에 보이는 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에 놀란 여러 나라에서 1940년대 이후 아담 스미스의 주장보다는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국민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1960~8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해 모순에 빠졌고, 그래서 다시 자유주의의 흐름으로 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를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비하여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미 실패한 이론을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고집스럽게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이런 사람에 비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잘 지켜주는 것, 즉 기업하는 여건을 잘 보장해주는 사회가 결국에는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생각을 갖는 사람이 바로 보수주의자다. 이들의 생각은 아담 스미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개인들이 국가의 제재를 받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한다. 결국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와 동의어인데, 이는 사실 상 개인의 자유 중 핵심적인 부분이 사유재산권의 존중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사유재산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기업체의 자율성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개인들이 소유하는 소비재는 사유일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 사유재산의 보호에서 중요한 부분은 결국 생산수단과 같이 거대한 투자에 대해 국가가 마구 침탈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업하는 자유가 만개한 세상, 이것이 바로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시장경제 체제였다.

 

한국 근대화기의 보수주의 원조 - 이승만과 박정희

그러면 한국의 현대 역사에서 보수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가 근대국가를 세운 1948 년 당시에 국가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것인지 아는 보수주의자는 극히 드물었다고 짐작이 된다. 근대 국가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선진국들이 어떻게 다른가 알고 그런 나라를 만드는 조건과 원리를 아는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 외에는 과연 몇 사람이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때의 보수주의는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서구 선진국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으로 6.25를 겪고 나서는 보수주의란 다른 무엇보다도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인민을 배급제의 올가미로 묶는 체제 만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한국에 있어서 보수주의의 첫째 조건은 반공을 이념으로 공산주의자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보수주의자의 원조라면 당연히 이승만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를 맞아서는 명실공히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꽃피우는 시장경제를 통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한국 보수주의자의 시각이 한층 더 넓어졌다. 반공의 토대 위에 국민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보수주의는 반공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의 양대 축으로 형성되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반공을 정언명령으로 삼고, 여기에 더하여 시장 자본주의를 잘 해서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일에 매진했다. 그러려면 국민의 자립, 자조하는 정신이 중요하므로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쌓고 북돋우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전개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과거의 좌절에서 벗어 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은 민간이든 관이든 협력해서 어떻게 하면 산업을 일으키고 수출을 더 많이 해서 경제 성장을 지속할 것인가만을 생각했다. 언젠가 박정희 대통령이 주무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장관! 제조업과 상업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장관이 조금 생각한 끝에 아무래도 제조업으로 뭔가 물건을 만들어야 팔 수도 있는 것이니 제조업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 놨다 한다. 이에 박 대통령은 조금 생각한 후 하지만 팔리지도 않을 것을 만들기만 하면 뭘 해요?”라는 반응을 내 놨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마도 직감적으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시장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고 ‘87체제라는 이름으로 헌법도 고쳐졌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지난 1990년대 이후 약 30 년 간의 흐름은 한국 보수주의의 쇠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근대국가의 완성을 통해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자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복고적인 당파싸움에만 휘말린 세월이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새 건국 초기의 보수주의적 지도자들이 추구해 왔던 반공주의 이념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많이 희석되었다. 과거 건국 초기에는 생각할수 조차 없었던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용어가 만연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에 와서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원래의 의미에서 많이 퇴색해 버렸다. 한국에 있어서 원래의 보수주의자라면 안보와 정치이념 면에서는 반공주의자이고, 경제 이념 면에서는 자유 시장주의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후퇴된 자칭 보수들은 친북만 아니면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완전히 틀렸고 절름발이 보수밖에 안 된다. 진정한 보수라면 반공주의뿐 아니라 자유 시장주의에서도 투철한 이념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한국을 근대국가로 만들어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한 비전 같은 것은 전혀 없으므로 보수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사이비 보수들은 단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인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그 동안 경험했다시피 경제민주화는 지난 세월 어렵사리 축적해 온 부를 서서히 나눠먹는 잔치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점은 진정한 보수주의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과연 진정한 보수주의자 그룹이 부활할 수 있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코멘트 쓰기
코멘트 쓰기
게시글 목록
Content
Name
Date
Hits
문근찬
2016-11-06
3637

비밀번호 확인 닫기